케인즈-드골-마크롱, 탈달러의 역사.

날짜: 2026-04-19
원문: https://x.com/Breadlee_FRM/status/2045836402320105924


주식 투자자부터 코인러에 이르기까지,
최근 탈달러가 굉장히 핫한 이슈다.
특히 대한민국 투자자들이 이 이슈에 유독 민감하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엮인 부분이 많기에 그렇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이 주제가 알고 보면 하루이틀된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생각과 다르게 탈달러는 나이 지긋한 오랜 논쟁거리에 가까우니까.

역사를 정말 대-충 둘러봐도,
탈달러에 대한 역사가 벌써 80년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긴 세월 미국은 탈달러를 방어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지금부터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주체들이 어떻게 탈달러를 시도했는지,
더 나아가 그런 시도들로부터 미국이 달러패권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이용했는지를 시간순으로 알아보자.

정확한 시작이 언제인지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학술적으로 유의미하게 달러패권에 대한 공격이 시도된 기록은 케인즈 때부터였다.
(너무도 당연하다. 애초에 달러가 패권을 잡은게 세계대전 이후니까.)
영국의 유대인이자 귀족인 케인즈는 1940년대 세계통화인 ‘방코르’와 이 통화가 운용되는 시스템인 ICU(국제청산동맹)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지만 힘이 있었다.
패권국의 경쟁적 환율 평가절하, 핫머니의 FX시장 난입, 무역 장벽과 관세, 흑자국의 금 축적 등등…
이 모든 게 대공황을 전 세계로 증폭시킨 것을 실제로 사람들은 지켜봤으니까.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봐도 그의 이러한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달러를 활용한 양털깎이와 같은 문제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달러패권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이로 미뤄보면 케인즈의 비판은 결국 선택되지 못했다는 것일 텐데,
미국은 어떻게 그의 비판을 방어하여 달러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시간순으로 알아보자.

시작은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의 발발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해석하는 가설은 다양한 학파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원인이 하나 있다.
바로 영국이 그 시발점이 됐다는 점이다.

사건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제국인 영국.
그들 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과도하게 재정을 남발했다.
이런 재정남발은 금본위라는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파운드의 금 대비 표시환율이 실질가치와 큰 괴리가 발생하는 문제를 야기시켰다.
케인즈는이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대표적인 사람이었고,
투자자들 또한 이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들은 명목환율 대비 가치가 적은 파운드화를 실물 금으로 태환했으며,
이렇게 파운드를 팔아치워 얻은 실물 금으로 미국 달러를 풀매수했다.

FX 아비트러지가 통화패권을 재개편하는 선봉장에 서 있던 것이다.
덕분에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전후 최대 채권국이자 최대 금 보유국이라는 위치를 순식간에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 마냥 지속되지는 않았다.
국제패권을 갖던 국가가 파멸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끝날 사안이 아니었던 만큼,
세계는 영국의 디플레이션과 실업, 무역붕괴가 가져온 대공황으로 인해 신음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케인즈,
그는 대공황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바로 “특정 국가의 화폐가 국제 기축통화가 되면 무역 불균형이 영원히 고착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역 흑자국도, 적자국도 대칭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1941년부터 방코르와 ICU라는 기합 넘치는 시스템에 대한 초안을 작성한 것이기도 하고.

그가 생각해 낸 개념은 간단했다.
방코르라는 초국가적 계산단위를 만들어,
각국 중앙은행이 ICU계좌로 무역을 청산하고,
과도한 흑자에는 이자 물리고 통화를 절상시키며,
적자에는 절하와 벌금 등의 제도로 자본통제를 강제하는 시스템.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배제하고,
보다 쉽게 풀어 쓰자면 이런 뜻이다.

무역으로 많이 벌어서 남는 국가는 통화가치를 절상,
무역적자국은 통화가치를 절하하여 무역시의 상품가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일종의 환율 제어장치로 작동하여,
만년 흑자나 적자를 보는 국가가 없도록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

비록 통화가치 절하가 무역흑자를 가져온다는 이론이 현대에선 잘 안맞긴 하지만…

아무튼 케인즈의 이런 주장,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선 꽤 와닿는다.

그렇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일까?
미국은 케인즈 때문에 그야말로 눈이 돌았다.

이제 겨우 세계대전 승전국 꿀을 달달하게 빨고 있는데,
수 백년간 해먹다가 대실패로 빚쟁이가 된 영국이 밥그릇을 내놓으라니?
미국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즉각 케인즈의 제안을 부숴버릴 대안을 물색했다.

그리고 1942년,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내놓은 대안인 국제안정화기금(오늘날 IMF)설립안과 케인즈의 방코르가 UN통화금융회의에서 부딪히게 됐다.
(참고로 화이트도 유대인이다.)

여러 날을 거쳐 미국과 영국측의 논의가 이어졌다.
의견은 팽팽했다.

그러나 최종투표를 해야 하는 국가들 입장에선 어땠을까?
그들은 이미 빛을 잃고 추락하는 영국보다는,
한창 폼이 오를대로 오른 미국의 눈치를 더 많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결국 미국측의 제안이 채택됐다.
우리가 잘 아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이 때부터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낼 권리를 손에 넣었다.)
반면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크게 삐진 케인즈,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달러패권체제가 불완전한 체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물론 미국과 그 뒤에 줄을 선 국가들은 코웃음쳤지만 말이다.

그러나 케인즈를 비웃은 사람들은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1950년대가 지나갈 때 즈음,
그의 경고는 트리핀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찾아왔으니까.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기축통화인 달러는 제한적으로 발행되어야한다.
얼마만큼?
보유한 금에 맞춰서.

그러나 미국은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창 최고의 주가를 구가할 때가 아닌가?

당연히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
(지금과 전혀 다를게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었을까?
미국은 보유한 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달러 발행량을 갖기에 이르른다.
6.25와 베트남전 같은 거대한 전쟁으로 지속된 재정의 증가가 달러 발행량 증가에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미국을 가장 크게 비판하며 나선 곳이 프랑스였다.
프랑스 대통령이던 드골은 화이트가 만든 IMF에 SDR이라는 특별인출권을 만들어 폭주하는 미국의 달러 방만이 가져올 부작용에 타국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이에 더해 미국이 무제한으로 빚을 찍어내 자신들의 빚을 갚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미국은 처음엔 드골의 발언을 개무시했다.
그러나 드골이 미국에 둔 금을 가져가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SDR에 찬성했다.

다행히 이렇게 소동이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미국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달러 발행량은 지수식으로 더욱 더 증가했으니까.

이에 참다 못한 독일을 필두로 스위스, 프랑스가 함께 나섰다.
이들은 보유한 달러를 매도하고 미국에 둔 실물 금을 본국으로 가져간다.
(심지어 프랑스는 해군 군함에 금을 실어 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늘 찐빠를 내는 우리의 영국.
그들마저 실물 금을 찾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사건이 터졌다.

닉슨이 배 째라며 발라당!
드러눕고는 닉슨쇼크를 일으킨 것이다.

이로써 실물 금과 가느다랗게나마 연결됐던 화폐의 시대는 종막을 맞이했다.

이처럼 드골의 금을 통한 달러패권에 대한 공격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안타깝게도 달러패권은 끝나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모두가 아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헨리 키신저.
천재적인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설계한 유대인 덕분에.

페트로달러가 명문화되며 과도하게 풀려버린 달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화폐증발의 부작용이 오히려 미국에게 새옹지마가 됐는데,
시장에 넘치는 달러 덕분에 달러-오일 거래시장도 그만큼 빠르게 규모를 키우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됐으니까.
이렇게 미국은 두 번째 달러패권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날.

드골주의 인사들을 중용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그는 NGFS와 BIS, IMF등등…
세계적인 기관과 함께 친환경을 앞세워 달러패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드골이 그랬던 것처럼 실물 금을 무기로 삼는 것 또한 병행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NGFS아젠다에는 현재 FED를 제외한 대부분의 강대국 중앙은행들이 강하게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번 위기가 역대 최대의 위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별 화제는 안되는 듯 보이지만 말이다.

최근 이란전쟁을 비롯해 미 행정부의 지나친 도박성 행동은 그들이 그만큼 궁지에 몰렸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구독자용 글에는 지속적으로 썼지만, 친환경은 이처럼 달러 이후의 새로운 통화패권을 위해 이용되는 가장 중요한 패로 쓰이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을 재무제표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행위다.)

차치하고,
이제 역사적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조금 보이는 느낌이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달러라는 통화가 계속 국제표준을 유지하는 것은 맞지만,
단기적으로 과도한 발행 이후 가치의 폭락은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또한, 역사를 미뤄보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달러를 희생시킨다.
그것이 자의적이던 아니던간에 상관 없이.
그리고 그 상황을 극복하는 해답을 찾아내는 방식을 늘 이용해왔다.
(이게 국가의 역사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트럼프도 비슷하죠?)

개인적으로는 “이번에는 다르다.” 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이번에도 무언가 획기적인 방식을 생각해낸다면?
달러패권은 한차례 더 연장될 것이다.
(참고로 그게 코인은 아닐 것. 코인은 애초에 케인즈의 방식에 가깝기 때문. 미국의 자존심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부디 아무런 패가 없어져버린 미국이 세계대전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봐온 바,
이 상황이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인 것 같아 무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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